“지금은 공적복음 회복 절실한 때다”
최형근 교수, 바른교회아카데미 목회자포럼서 주장
2011년 05월 19일 (목) 13:07:26 교회와 신앙 장운철 kofkings@amennews.com

▲ 최형근 교수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해 냉소적인 게 요즘 세상이다. 비판을 넘어 심하게는 ‘멸시’를 보낸다. 그럴 때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지 못한 원인을 생각하며 반성할 일이 적지 않다. 그런데 세상이 ‘복음’에 대해서도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다. 복음은 은혜요, 절대적인 것인데 그것이 인간 행동의 ‘무엇’으로 인해 동일하게 취급 받는 것에 대해선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신대 최형근 교수(선교학)는 지난 5월 17일 바른교회아카데미(원장 김동호 목사) 주최 목회자포럼에서 “공적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며 그 대안을 제시했다. 공적복음이란 공적영역 즉, 회사·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들이 그 믿음의 표현을 소속된 교회 밖에서 펼치지 못하는 게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에 무반응 또는 냉소적 반응을 일으키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갱신을 위한 공적복음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세미나에서 최 교수는 공적복음이 살아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우상숭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우상숭배의 범위를 성공지향적 사고, 권력 집착 행동, 육신의 정욕 등으로 요약했다. 그것을 한 마디로 ‘자기중심적 성향’으로 꼬집기도 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기독교 복음의 공적차원을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내려 자기만족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간적 종교로 전락시켰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변혁적 갱신적 영향력을 끼치게 되어 있던 것을 교회가 개인적 신앙으로 가두어 버렸다는 말이다. 최 교수는 계몽주의, 모더니즘 사고, 서구문화 등이 그 원인이라고 언급했다.

계몽주의와 모더니즘으로 인해 인간의 자율성, 독립성의 추구가 결국 자아운동(self movement)을 극대화시켰고 그것이 교회로 들어오면서 복음의 개인주의화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이것이 서구문화, 구체적으로는 미국문화와 손을 잡게 되면서 개인주의는 물론 실용주의, 소비주의가 덧붙여지게 된다.

결국은 복음으로 인해 자신의 자아추구만 있으면 된다는 식의 변질된 신앙이 탄생하고 말았다. 신앙을 교회와 기껏해야 가정으로 국한시켜 버린 것이다. 정치, 경제, 직장 등 공적영역을 잃어버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 교회가 매년 신년예배 때의 헌금을 모두 모아 환경보호를 위해 사용한다는 식의 일들 말이죠. 이런 이야기를 어느 모임에서 했더니 한 중견교회 목사님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저는 정말 찬성인데, 그 안이 당회에 올라오면 부결될 것입니다’라고 말이죠.”

교회가 ‘래디컬’(radical)면이 너무도 약해졌다는 게 최 교수가 안타까워하는 점이다. 복음을 위해 급진적인 변혁에 대해 허약체질이 되어버렸다는 말이다. 최 교수는 변혁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려는 모습이 커졌다며 데이비드 웰스의 말을 인용, 한국교회의 모습을 꼬집었다.

“의에 대한 성경적 관심은 행복 추구로, 거룩함에 대한 관심은 자아 통합성에 대한 추구로, 진리에 대한 추구는 감정에 대한 추구로, 윤리에 대한 추구는 자신의 자아에 대한 좋은 감정에 대한 추구로 대체되고 있다. 세계는 개인적 상황의 범위 안으로 축소되며, 신앙공동체는 개인적인 주변 친구들로 줄어든다”(데이비드 웰스, <신학실종>, 부흥과개혁사, 2006, p.274).

공적복음의 회복은 절실하다. 바로 지금이 그때다. “교회가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공헌은 교회 자체가 새로운 사회적 질서가 되는 것”이라는 뉴비긴의 말을 인용하며 최 교수는 공적 회복을 강조했다. 거짓된 경제, 사회, 정치적 이념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대항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렇다고 정치계에 입문하라는 식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공적복음의 회복, 다시 말해 공적영역에서 복음으로 살아가야만 함을 언급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몇몇 공동체에서 그 의식으로 열정을 내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가 이미 상당한 수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선교지에서 복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을 봐서도 알 수 있다. 서해안 기름 유출 사고를 당했을 때, 교회가 앞 다투어 청소를 한 것 등도 좋은 예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모던주의, 포스트모던주의, 실용주의, 소비주의 등 사적인 영역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 한 복판에서 공적복음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뉴비긴의 말을 인용함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 초대가 만약 구세주의 은혜가 역사하는 공동체로부터 온다면,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받아들여질지의 여부는 우리의 능력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염려하고 안달하는 것은 믿음 없음의 표시다. 우리가 아니라 오직 초대하는 분에게 통솔권이 있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신실하게 증언하며 살아나가야 한다. 나머지는 하나님의 손에 맡겨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성공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영광을 받는 것이다”(레슬리 뉴비긴, <포스트모던 시대의 진리>, IVP, 2005, pp.8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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